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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동의보감》 은 어떤 책인가?

by mandara1 2025. 9. 10.

허준의 동의보감
허준의 동의보감은 총 25권이며, 최초의 동양의학서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의학서, 《동의보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드라마 '허준'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주인공이 바로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님입니다.

허준(1539~1615)은 조선 중기의 의관으로, 76년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장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동의보감》은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읽고 배우는 소중한 책입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이 책은 정말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다"라며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했답니다. 동양 의학서로는 최초의 일이었죠.

혼자 남겨진 허준이 14년 동안 집필한 동의보감

《동의보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어보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1596년, 조선의 14대 임금인 선조가 허준을 불러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아플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의학책을 만들어 달라. 어려운 중국 의학서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정리해서 말이다."

선조의 이런 명령에는 깊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의 상처로 극심한 혼란과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의약품이 부족했고, 백성들은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죠. 기존의 중국 의학서들은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서 실제 활용하기 어려웠습니다.

허준은 기꺼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양예수(梁禮壽), 김응탁(金應鐸), 이명원(李命源), 정작(鄭碏) 등 당대 최고의 의관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현대의 의학 연구팀처럼 말이죠. 하지만 1년 후인 1597년, 갑자기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정유재란이었죠. 전쟁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면서 함께 작업하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허준은 혼자 남게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아프고 고통받고 있는데, 내가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무려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허준은 혼자서 이 거대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1610년(광해군 2년), 드디어 《동의보감》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613년에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왔어요.

'동의보감'은 동방의 의학이다

《동의보감》이라는 제목도 의미가 깊습니다. '동의(東醫)'는 '동방의 의학', 즉 우리나라의 의학을 뜻합니다. '보감(寶鑑)'은 '귀중한 거울'이라는 뜻이고요. 합쳐서 해석하면 "동방 의학의 귀중한 지침서"라는 의미입니다.

당시에는 중국의 의학이 최고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허준은 "우리 땅, 우리 기후, 우리 체질에 맞는 독자적인 의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자주적이고 혁신적인 사고였죠. 실제로 《동의보감》은 단순히 중국 의서를 번역하거나 요약한 것이 아닙니다. 허준과 여러 의관들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의 풍토와 질병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에는 허준의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바로 '한글'을 사용한 점입니다.

그 시대의 의학서들은 모두 어려운 한문으로만 쓰여 있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 있어도 활용할 수 없었죠. 하지만 허준은 달랐습니다. 약재의 이름이나 처방을 한글로도 함께 적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조금이라도 아는 백성들이 스스로 약을 구해서 치료할 수 있었거든요. 이는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건강까지 배려했던 허준의 애민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동의보감의 체계적인 분류-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편

《동의보감》은 총 25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책입니다.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분류 체계가 현대 의학의 전문 분야와 놀랄 만큼 유사합니다.

첫 번째, 내경편(內景篇) - 몸속 깊은 이야기

우리 몸 안의 장기들, 즉 심장, 간, 폐, 신장, 비장 등 오장육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엔진 설명서 같은 거죠. 특히 주목할 점은 허준이 제시한 '정기신(精氣神)' 이론입니다. 정(精)은 생명의 근본 물질, 기(氣)는 생명 활동의 에너지, 신(神)은 정신 활동을 의미합니다. 이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하다고 봤습니다. 현대의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과 매우 유사한 개념이죠.

두 번째, 외형편(外形篇) - 몸 겉모습의 모든 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 몸의 겉모습에 생기는 여러 질병들을 다룹니다. 눈병, 귀 아픈 것, 코 막힌 것, 피부병 등 일상에서 자주 겪는 문제들의 해결책이 가득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허준이 각 신체 부위별로 해부학적 구조까지 상세히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400년 전에 이미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거죠.

세 번째, 잡병편(雜病篇) - 복잡한 병들의 종합 안내서

감기, 소화불량, 여성 질환, 어린이 병, 심지어 마음의 병까지 다양한 질병들을 11개 대분류로 정리했습니다. 현대로 치면 종합병원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를 모두 아우르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 질환을 별도로 분류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사고였습니다. 허준은 이미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죠.

네 번째, 탕액편(湯液篇) - 천연 약국의 완벽한 가이드

무려 474가지나 되는 약재에 대해 설명합니다. 각 약재가 어떤 효능이 있는지, 언제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약재는 식물성 약재(약초), 동물성 약재, 광물성 약재로 분류되어 있으며, 각각의 성질(寒熱溫涼), 맛(酸苦甘辛鹹), 독성 유무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마치 현대의 약리학 교과서 같아요.

다섯 번째, 침구편(鍼灸篇) - 침과 뜸의 과학

침을 놓는 방법과 뜸을 뜨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우리 몸의 어느 부위(경혈)에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상세한 그림과 함께 알려줍니다. 총 365개의 경혈점과 기외기혈(정규 경혈 외의 특별한 점)들을 자세히 기록했으며, 각 혈자리의 위치, 깊이, 치료 효과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현대 의학이 재발견한 동의보감의 지혜

400년이 지난 지금도 《동의보감》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허준은 "상공치미병(上工治未病)" - 뛰어난 의사는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한다는 원리를 강조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예방의학'의 선구자였던 거죠.

구체적으로 제시한 양생법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규칙적인 기상과 취침
  • 계절에 맞는 식단 조절
  • 적절한 운동과 휴식의 균형
  •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관리
  •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

이런 내용들이 현대 의학에서도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안 되고,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걸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허준은 이미 400년 전에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과 완전히 같은 개념이죠. 실제로 많은 현대 질병들(우울증, 불안장애,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이 정신적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감기라도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니까 치료법도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허준은 환자를 다음과 같이 세분화해서 접근했습니다.

400년을 이어온 의학지침서

《동의보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1724년 교토에서 첫 번째 일본 간본이 출간된 이후, 에도시대(1603-1868) 전체를 통해 의사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교재였습니다.

《동의보감》은 단순한 옛날 의학서가 아닙니다. 허준의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의지, 그리고 인간의 건강에 대한 깊은 통찰이 모두 담겨 있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4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낸 이 책은 과거의 지혜가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허준이 꿈꾸었던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하니까요.